-
목차
일제강점기 식민지 교육정책의 서막
1910년 한일합병조약 체결로 시작된 일제강점기는 한국 민족에게 정치적 자유뿐 아니라 문화적, 정신적 자율성마저 송두리째 빼앗긴 어둠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일본 제국은 단순히 땅과 사람을 지배하는 것을 넘어서, 조선인들의 사고방식과 정체성, 역사관까지 완전히 장악하고자 했다. 그 중심에 바로 ‘교육’이 있었다. 교육은 총칼보다 무서운 도구였다. 한 사람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기초는 어릴 때부터 주입되는 교육에서 비롯되기에, 일제는 그 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조선을 지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교육정책을 선택했다.
교육을 통해 조선인을 일본에 충성하는 황국신민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일제의 목표였다. 그들은 조선인의 역사와 문화를 지우고,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강제 주입함으로써 식민지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려 했다. 이는 단순히 교육 제도를 도입하거나 근대화를 시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체성의 말살을 위한 철저히 계산된 제국주의적 프로젝트였다. 학교는 더 이상 배움과 계몽의 장소가 아니었다.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재탄생'시키는 장치였고, 교육은 일제의 지배를 영구화하기 위한 치밀한 문화적 침략이었다.
조선교육령의 제정과 그 이면의 목적
1911년 8월 23일, 제1차 조선교육령이 공포되며 식민지 조선의 공식적인 교육정책이 시작되었다. 이 교육령은 조선의 전통적인 교육체계인 서당과 향교를 무력화시키고, 일본식 근대 교육체계를 강제로 도입함으로써 조선인 학생들을 일본의 가치관에 길들일 수 있도록 체계화된 지침이었다. 겉으로는 조선에 근대 교육을 제공하고, 문맹을 퇴치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내면에는 '황국신민화'라는 본질적인 목적이 숨어 있었다. 이 교육령은 일본어 사용을 의무화하고, 조선어는 선택과목으로 한정하였으며, 천황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교육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후 제2차 조선교육령(1922년), 제3차 조선교육령(1938년), 그리고 제4차 조선교육령(1943년)이 차례로 발표되며, 교육정책은 점차 조선인에 대한 동화 압박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히 제3차 조선교육령은 전면적인 황국신민화 교육의 출발점이었다. 이 시기부터 조선어는 점차 수업에서 사라졌고, 조선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시간은 일본 역사와 국가주의 교육으로 대체되었다. 조선의 아이들은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일본 황실을 숭배하고, 일본의 전통을 내면화하도록 훈련받았다. 이는 단순한 차별이나 억압이 아닌, 정체성 자체를 전복시키려는 악의적 시도였다.
학교 현장에서의 차별과 통제
일제강점기 학교 현장은 외형적으로는 질서 정연하고 체계적인 교육공간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 이면은 철저한 감시와 차별, 통제의 구조로 짜여 있었다. 조선인과 일본인은 동일한 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일본인은 '소학교', 조선인은 '보통학교'라는 이름 아래 철저히 구분되었다. 조선인 학교는 시설이 낙후되고, 교사 수는 턱없이 부족했으며, 교육 내용 또한 제한적이었다. 일본 학생들에게는 문학, 과학, 역사, 수학 등 폭넓은 과목이 제공되었지만, 조선인 학생들에게는 노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과 일본어, 일본 역사, 윤리 교육만 주어졌다.
이러한 차별적 교육은 단순한 무시를 넘어, 조선인들이 스스로를 열등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자기부정의 교육'이었다. 조선의 아이들은 자신이 배우는 역사 속에서 조선은 미개하고 일본은 문명화된 국가로 묘사되었다. 학교는 일본의 우월함을 각인시키는 장소였고, 조선의 전통은 고루하고 낙후된 것으로 취급되었다. 교실에는 일본 국기와 천황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매일 아침 '황국신민 서사'를 외우며 경례를 해야 했다. 그 속에서 조선인 학생들은 스스로를 부정하고 일본에 복종하도록 훈련받았다. 이는 교육의 이름을 빌린 정신적 침탈이자, 집단적 세뇌였다.
여성 교육의 왜곡과 억압
식민지 조선에서 여성은 이중의 억압을 받았다. 전통 사회에서조차 교육의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조선 여성들은, 일제하에서는 더욱 철저히 사회적 역할이 제한되었다. 일본은 조선 여성에게 '현모양처'라는 틀을 강요하며, 가정 내에서의 역할에만 충실할 것을 교육했다. 여학교는 있었지만, 그 교육 내용은 대체로 가사, 재봉, 바느질, 요리 등 가정생활에 필요한 기술 위주였다. 여성이 학문적 사고나 사회 진출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일은 철저히 금지되었다.
이러한 여성 교육은 일본의 가부장제 사회가 조선에 그대로 이식된 결과였다. 조선 여성들은 정규 교육을 받아도 교사나 간호사 같은 특정 직업군 외에는 거의 진출할 수 없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교육을 통해 여성에게도 황국신민화가 강요되었다는 것이다. 여성 또한 일본어를 사용하고, 일본식 예절을 익히며, 천황을 숭배하도록 강제되었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 역시 정체성을 상실해야 했으며, 이는 단순한 차별이 아닌, 문화적 정체성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폭력이었다. 여성 교육의 왜곡은 해방 이후까지도 여파를 남기며, 한국 사회의 젠더 불평등 구조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조선어 교육의 축소와 민족 정체성의 위기
언어는 한 민족의 정신적 혼이며, 집단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어를 위험한 존재로 인식했다. 조선어는 조선인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게 만드는 매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은 조선어를 제거하고 일본어만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뿌리째 제거하려 했다. 1911년 이후 조선어는 점점 주변화되었고, 1938년 이후부터는 조선어 수업이 공식적으로 폐지되기 시작했다. 1943년 제4차 조선교육령에서는 조선어 수업이 전면적으로 사라졌고, 조선어는 ‘불온한 언어’로 취급되었다.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학생들은 조선어를 몰래 배우거나, 가정에서만 사용해야 했다. 심지어 일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일본어만 가르치며, 조선어를 잊게 하려 했다. 그것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프레임이다. 조선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조선인의 사고방식과 문화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언어를 통한 사상통제는 총칼보다도 더 집요했고, 그 상처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식민지 교육정책이 남긴 후유증
해방 이후 한국 사회는 일제의 교육정책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여파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왜곡된 역사관은 쉽게 교정되지 않았고, 일본 중심의 가치 체계가 사회 곳곳에 잔재로 남았다. 해방 직후에는 교육 교과서가 부족했고, 교사들도 일제의 교육을 받았던 인물들이 많아 즉각적인 탈식민화가 어려웠다. 식민지 교육정책은 조선인을 순종적인 피지배자로 만드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해방 이후 자주적 교육을 정립하는 데까지도 장애물로 작용했다.
더불어 조선어 교육의 단절은 언어문화의 단절로 이어졌고,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을 초래했다. 특히 여성 교육의 왜곡은 여성의 사회 참여를 오랫동안 제약하는 요소로 남았다. 우리는 이 후유증을 직시하고, 단순히 해방이라는 시간의 선으로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식민지 교육정책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의 정체성과 교육제도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속적인 역사 교육과 정체성 회복 운동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의 과제와 역사적 성찰
우리가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교육정책을 되돌아보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어떤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미래 세대에게 어떤 교육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물리적 침략을 받지 않지만, 문화적·정신적 침략은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기에 역사를 바로 알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교육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현대 사회는 다양성과 글로벌화라는 명분 아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정체성이 없는 교육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 우리는 민족의 언어와 문화,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 이를 미래 세대에 정확히 전달할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식민지 교육정책이 어떻게 우리의 정신을 지배했는지를 직시하고, 그 폐해를 반복하지 않는 교육철학을 확립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이며, 진정한 교육의 시작이다.
잊지 말아야 할 교육의 본질
교육은 단순한 기능적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한 민족의 뿌리이며, 존재의 이유를 묻는 철학적 행위이다.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교육정책은 이러한 교육의 본질을 파괴하려 했고, 그것은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상처 속에서도 정체성을 지키고자 한 수많은 이름 없는 저항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글을 몰래 가르치고, 조선어를 숨겨 가르치며, 일본의 억압 속에서도 조선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그렇게 지켜낸 정신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제 우리의 책임은 명확하다. 진실을 기억하고, 교육을 통해 그 정신을 계승하며, 다음 세대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당당히 세상과 맞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교육의 힘이고,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이유다. 교육은 민족의 생명줄이며, 그 줄을 지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의 복식 문화와 신분제 (0) 2025.03.28 산업화 시대의 교육열: 서울대는 왜 신화가 되었는가? (0) 2025.03.27 입시제도의 변화와 한국 사회의 긴장 구조 (0) 2025.03.26 조선시대 서당과 과거시험 (2) 2025.03.25 2000년대 이후 MZ세대의 삶과 소비 패턴 (1) 2025.03.25